• 최종편집 2024-03-28(목)
 
문해룡 목사2.JPG
본인은 로에현상과 일중심형을 비슷한 인격으로 구분한다. 일중심형의 사람들은 대체로 대인관계가 썩 좋지 않다. 아무래도 일중심이다 보면, 결과론적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그 과정은 깡그리 무시한 채 상대방을 힘들게 한다. 본인은 이들을 일중독자라고 말하기도 한다. 중독에는 게임만 있는 것이 아니다. 때론 설교자 가운데도 모든 것을 열매 위주로 설교하시는 분들도 봐왔다. 안타깝다. 결국 우리는 한 영화의 ‘뭣이 중헌디?’ 유행어처럼 삶의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이다. (짧은 지면상 내 감정부터 쓴다.)
 
앞 칼럼11에서 로직에러(Logic Err, 로에) 현상의 대한 용어를 정의한 바와 같이, 우리는 컴퓨터, 스마트폰, 그 외 사회 조직 등이 수와 관련된 Logic의 체계가 더 좋은 결과를 초래한다는 이유로 우리의 뇌는 여기에 고착화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다. 그래서 부부, 가정생활도 이러한 개념 속에서 서로를 간섭하지 않는 범위 내에 관계가 형성되어진다. 교회도 마찬가지 인듯하다. 목사가 성도의 삶을 눈치 보며 따라 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라고 말한다. ‘뭣이 중한가?’ 이것을 놓치게 되면 결국 인본주의적 중심으로 합리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본질, 법, ruler, 말씀, 진리, 율법,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 이런 단어들의 공통점 즉 우리에게 주는 핵심은 인간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중독, 즉 과의존 된 또 다른 기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삶이다. 중독과 여가는 한 끗 차이다. 하나님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본다. 하나님을 두렵고 떨림으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의 차이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여기서 우리 삶의 향방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결정된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새법을 주셨다. 용납하고 용서하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고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대접하며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법을 주셨다. 이것은 일 중심형의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영혼 중심의 삶을 뜻한다. 영혼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의 뇌가 logic적인 삶의 방식에만 매여 - 본인은 합리적인 사고 방식도 이에 포함한다. - 예배와 기도를 통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살피며 보이는 것만 쫓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보는 안목이 있을 때, 성령의 간섭으로 인해 이 모든 타락한 문화를 대적할 능력이 생김을 확신한다.

에베소서 6장
10.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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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칼럼] 분노조절 장애와 로직에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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