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송시섭 교수.JPG
올해는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한 지 500년이 되는 해다. 루터가 1517년 교황청의 면죄부판매에 반대하여 비텐베르크성(城)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일 때 중세교회는 새로운 도전을 맞게 되었다. 교황 레오 10세는 ‘누구든지 면죄부를 반대하는 수도승은 이단’이라고 선언했고, 루터는 1520년 12월 10일 교황의 소환장을 공개적으로 불태웠다. 그러나 그 날 루터가 불태웠던 것은 소환장만이 아니었다. 그는 ‘교회법전’ 또한 공개적으로 불태웠는데 이는 당시 중세교회의 또 하나의 큰 축인 교회법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그는 교황의 수위권(papal supremacy)이 교황의 칙령에 기해 구축된 것이고, 그 칙령의 결정판이 교회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루터가 교회법전을 연구하면서, 법전을 이루고 있는 많은 교황의 칙령, 그리고 교회 공의회의 많은 법령 등이 위서(僞書) 내지는 위작문서임을 발견하게 되면서 교황과 더불어 로마가톨릭교회를 지탱하고 있던 큰 기둥인 교회법전이 썩어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교황청이 루터의 책들을 불태우라고 명하자, 그에 대항하여 루터는 교황의 칙령이 집대성된 교회법전을 불태워 버렸던 것이다.
 
‘교회법이 없어지지 않는 한 교회는 개혁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던 루터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교회법’은 무시되고 배척되어야할 대상이었고, 교회법연구의 흐름은 그 맥이 끊어져버렸다. 그러한 교회법 배척의 흐름은 칼빈에 의해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 칼빈은 스트라스부르크에서 만 3년(1538-1541)의 깊은 사색과 목회, 연구와 저술생활을 마치고 1541년 9월 제네바로 돌아온 후 자신을 다시 부른 제네바의 개혁을 구체화하기 위해 3대 프로그램을 가져야 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교회법’이었다. 칼빈이 만든 1541년의 「제네바 교회법」(Genevan Ecclesiastical Ordinances)은, ‘우리 주님께서 그 분의 교회를 다스리기 위하여 제정하신 직분은 네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목사이고, 다음은 교사, 그리고 장로, 넷째는 집사이다’라는 문장으로 시작되어 성찬(聖餐)의 의미를 강조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고, 교회법을 통하여 그의 종교개혁의 의지를 펼쳐 보임과 더불어, 자신이 꿈꾸는 바람직한 교회공동체의 비전을 담게 되었다. 이제 다시 교회는 세속법전과는 다른 영적규율의 근거로서의 ‘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지나 우린 ‘교단헌법’이라는 명칭의 법전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개신교 크리스천에겐 아직도 ‘교회법’은 다소 생소한 단어다. 아마도 우린 칼빈의 길보다는 루터의 여정을 따라 너무 오랫동안 걸어왔던 것은 아닐까. 루터와 함께 우린 세상으로부터의 구별과 순수 신앙의 견고한 진을 마련하였다. 하지만 우린 루터의 길 위에서 세상과 공통된 ‘법’이라는 창구를 통해 세상을 섬기고 이해하며 함께 소통하는 공동체로 거듭나는 도구를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들이 준비될 것이다. 필자는 그 행사가운데 하나로 ‘교회(헌)법의 재건과 통일’을 제안하고 싶다. 유대 율법주의와 중세 교회법의 폐단을 극복하면서 성경이 담고 있는 인류보편의 가치들을 새롭게 구축해야 할 교회법은, 교단통합의 출발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확립, 대사회적인 신뢰성의 회복과 공감대형성의 계기를 마련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루터가 태워버렸던 교회법전의 잿더미에서 새로운 개신교 교회통일헌법전이 불사조처럼 탄생하길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새해에 간절히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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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섭 교수] 교회법을 재건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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