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1975년 11월 26일 오후 2시 부산 교계 목사 22명이 박근혜 구국선교단 명예총재을 만나기 위해 새벽 5시에 서울로 향했다. 당시 부산 구국선교단 지부장이자 십자군 부산 사령관으로 별 3개 휘장이 붙여진 십자군 복장을 입은 변창남 목사의 인솔로 출발했다. 부산교계 누구나 알 수 있는 중견 목사를 비롯하여 작은 교회 목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회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행여나 박정희 대통령을 만날 수가 있을지 기대하고 떠난 만남은 불발이었고, 박근혜 큰 영애만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대통령 문향이 새겨진 손목시계도 선물을 받았다. 접견실에서 다과로 30분간 차를 나누며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부산으로 내려왔다. 물론 기념촬영도 했다.
1976년 2월 하순경 서울에 있는 야간무료의원에 박정희 대통령이 밤 10시에 갑작스럽게 방문했다. 이를 중앙지 신문, 방송매체에서 일제히 보도가 나갔다. 박 대통령은 많은 사람들이 무료진료 받는 것에 놀랐고, 이들이 호응이 좋으니까 “전국에 이런 야간무료의원이 있으면 좋겠다”고 지시했다. 그리고 두 달 후 지방에서 첫 번째로 부산시 동구 초량에 있는 공예학교 별관 자리에 야간무료의원이 세워졌다. 별관 1, 2층은 수도도 전기도 없는 시설이었다. 박영수 시장이 변 목사를 불러 “변 목사님, 지금 수도국장에게 지시해 놓았으니 가서 의논하시면 될 것입니다”라고 해서 변 목사가 수도국장을 찾아 방문했다. 그런데 수도국장은 “아니 수도을 개설할려면 여기부터 찾아 시설 신고하면 되는데, 왜 시장님한테 가느냐?”며 구박을 했다. 수도국장의 면박이 어찌나 서러운지 그냥 그 자리에 나와 버렸다. 그리고 부산시장한테 그 사실을 보고하자, 박시장이 “그 수도국장을 다른 데로 자리를 옮겨 버리겠다”고 말하며 하루 만에 수도와 전기공사를 마무리 한 일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그때 변 목사의 나이가 37세. 젊은 나이에 최태민을 알게 됐다. 멸공을 앞세운 타이틀과 박 정권과 깊은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최태민을 신뢰했다. 구국선교단을 만들어 십자군 제복에다 여성들도 함께 전국 조직을 하는 참신한 아이디어에 당시 많은 목회자들이 최씨에 속아 넘어갔다. 최태민은 불교의 미륵불을 숭상하고 산에서 도를 닦고, 최면술을 배워 박근혜의 어머니 육 여사의 꿈 이야기를 했고, 박근혜를 현혹한 목사의 탈을 쓴 사이비 교주였다. 
변창남 목사는 젊은 시절 초량교회에 출석하면서 영도에 있는 합동 측 부산신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자신을 최태민 측과 한 그룹으로 보고 일부 목사들이 부산노회에 적을 두고 있는 변창남 목사를 제명해야 한다고 서명을 받곤 했다. 이때 중앙정보부 관계자가 이들 목사들을 만나 으름장을 놓는 바람에 제명운동 서명을 중단 한 웃지 못 할 해프닝도 있었다.

△정치권력에 맹종했던 교계지도자들
70년대 한국교회는 그야말로 유신 독재정권의 서슬이 퍼런 시절에 그 어느 누가 입도 뻥끗 못했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KNCC 가맹교단인 기장, 통합, 구세군, 복음 교회 등 유독 반체제인사 등이 민주화를 부르짖고 독재 타도를 외칠 시절이었다. 최태민은 이 틈을 뚫고 한국교회 ‘목회자’라는 타이틀을 걸고 정권을 통해 개인의 이득을 챙기려고 박근혜를 현혹해 구국선교단을 설립했다. 최태민은 주로 합동 보수교단인사 목사들을 규합했다. 그 반열에 처음으로 들어 간 것이 변창남 목사이다. 그는 당시 교회를 담임하지 않고, 특수목회인 노인들을 섬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최태민의 경로사상 설득에 넘어 간 것이다. 그러나 변 목사는 정치권력은 잠시뿐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속해서 노인 복지라는 한 우물을 팠다. 전국 노인 복지협의회을 조직했고,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입법활동도 요구해 왔다. 변 목사는 “한때는 최태민을 추종하였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교, 구국봉사라는 단어에 그 운동이 좋아서 헌신한 것이지 최태민으로부터 어떤 특혜도 받은 바 없다”고 말했다. 
최태민이 사이비라는 사실은 전두환 정권 시절에야 알게 되었다고 말하면서 그때 손을 끓고 독자적으로 경로복지회를 운영해 왔다고 했다. 변 목사는 “사람들이 최태민과 최순실을 가장 많이 알 것 이라고 말하지만 실을 별로 아는 것이 없다”고 말했다. 
변 목사가 최태민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최씨가 중앙정보부 조사를 받고, 한양대 병원에 입원했을 때였다. 당시 청와대 초청으로 서울을 가게 되었는데, 이때 최씨가 만나자고 한 것이 마지막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때 병실 주위에는 중앙정보부 사람들이 최씨 방문을 지키고 있었고, 최씨는 부인과 함께 병실에서 누워 있었다고 한다. 
종교가 세상 정치권력과 야합하면 모두가 허무하게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이 역사가 말해주고 있듯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도 사이비 종교가의 무속적인 사교에 의해 순진하게 온실에서만 자란 박근혜 속에 사탄이 들어가 모두를 파탄의 구렁텅이로 몰아 간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누굴 보고 돌을 던질 것이 아니라 “내 탓으로” 하나님 앞에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정으로 회개해야 한다는 자세와 이제는 성숙한 안목으로 이 나라 조국 대한민국 지도자를 바르게 뽑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 삼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음 세대를 위해 남은 우리들의 몫이다. 

신이건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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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 최태민에 놀아난 한국교회 성직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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