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3-28(목)
 
홍석진 목사.jpg
새가족부 집사님께서 과일 접시 한복판에 녹차꽃 한 송이를 두셨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꽃인데 정말 예뻤습니다. 게다가 흰색 꽃잎 하나마다 저마다의 풍미가 있다지요? 쓴맛의 고(苦)와 단맛의 감(甘), 신맛의 산(酸), 짠맛의 함(?), 떫은맛의 삽(澁), 그러고 보니 이 꽃잎 한 송이에 우리네 인생의 진면목까지 다 담겨 있는 셈입니다. 녹차꽃에 홀려서인지 녹차를 한 잔 끓였습니다. 녹차 향기가 가을 향기와 뒤섞여 묘한 운치를 자아냅니다. 가을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 그랬는데, 가을꽃 녹차 내음 속에 좋은 책 한 권을 읽는 것에 비견할만한 인생의 낙이 또 없지 싶습니다.
  올봄방학 때 속초로 가족 여행을 떠났었습니다. 여행을 떠난 저에게는 괴벽(怪癖)이 하나 있습니다. 책방을 찾는 일입니다. 사실 21세기 여행지에서 책방 찾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가난한 고학생들에게는 착한 도서관이기도 했던 서점들이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춘천에서 서점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습니다. 체인점도 아니고 백화점 서적 코너도 아니니 그냥 동네서점이라고 불러야 할 텐데 그게 미안할 정도로 근사한 책방을 길가에서 그냥 찾았습니다! 안에 들어가서 진열된 책들을 보고는 더 놀랐습니다. 대형 서점이나 신간 안내 책자에서도 보지 못했던, 그러나 내용을 들여다보니 참 좋은 책들이 즐비한 게 아닙니까? NHK에서 취재하고 모타니 고스케(藻谷浩介)가 쓴 『숲에서 자본주의를 껴안다』(서울: 동아시아, 2015) 등이 그 때 구입했던 책들입니다. 차로 몇 시간 거린데도 묘한 예감(?) 탓인지 계산하면서 회원 가입까지 했던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서점이 신문에 났습니다. 10월 8일자 C일보는 주말 섹션에 <손님 줄어드는데도 매장 키운 속초의 60년 된 책방, 3대째 내려오는 D 서점>이라는 제목의 취재 기사를 실었습니다. 1956년 할아버지가 처음 시작한 서점을 맡기로 한 막내 손자 김영건 씨는 망설이던 끝에 “해 보자, 대신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어보자!” 결심했다고 합니다. “서점 기능에 충실한 서점을 만들고 싶었어요. 오래된 서점이 관광지 역할을 하면서도 책은 못 파는 경우가 많잖아요. 손님들이 우리 서점 와서 모르는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면 그게 바로 매출로 이어질 거란 생각에 공간도 개방적으로 꾸몄죠.” 장소를 이전하고 주차장과 실내 공간을 늘렸습니다. 동네책방수난기가 난무하는 시대를 그렇게 역주행했습니다. 그런데 무심결에 방문했던 손님들이 책을 읽다가 사 가기 시작합니다. 베스트셀러 목록을 참고하는 사람들이 생겼는가 하면, 매달 독서 모임이 열리고, 급기야는 입소문을 타고 관광객이 들리는 여행 코스가 되었답니다.
  가끔 이렇게 기분 좋은 승리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소설가 이효석이 낙엽을 태우면서 느꼈던 묘한 쾌감이 이런 것이었을까요? 소소한 일상 가운데 깨달은 인생의 진리 같은 것 말입니다. “서점은 서점다워야 한다.” 서점뿐이겠습니까?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 ‘목사가 목사다워야 한다.’ 가을은 서점에게만큼 교회에도 중요한 계절입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서점만큼이나 개신교도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교회는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하겠습니까? 춘천 책방은 시류 앞에 기죽지 않고 다른 것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서점으로서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에 부흥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교회도 기죽지 않고 다른 것 쳐다보지 않고 오직 교회로서의 기본과 본질에 충실할 수 있다면, 부흥의 역사를 새롭게 써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녹차 향기 가득한 이 가을에 나머지 책방들도 함께 그리고 교회도 근본으로 돌아가(ad fontes) 승리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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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칼럼] 춘천 어느 책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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