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19(금)
 
김운성목사 copy.jpg
지난 10월 9일은 570돌 한글날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세종 28년, 음력 9월 10일에 훈민정음이 공표되었는데,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446년 10월 9일이 됩니다. 일본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상황에서 민족정신을 수호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1926년에 제정되었습니다. 현재 한글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한글이 처음부터 <한글>이라고 불린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훈민정음, 訓民正音>이라 불렸는데, 그 뜻은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입니다. 그 후 <언문, 諺文>이라고도 했는데, <언,諺>이란 ‘우리말’ 또는 ‘정음’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세종 시대에는 <언문청, 諺文廳>이 설치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그 후 <언서, 諺書>라고 불리기도 하고, 여성들이 많이 사용한다 해서 <암클>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중 1908년 주시경(周時經)을 중심으로 <국어연구학회>가 만들어졌으나, 일제의 탄압에 못 이겨 바로 <배달말글몯음>으로 이름을 고쳤다가, 1913년 4월에 다시 그 이름을 <한글모>로 고치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때부터 <한글>이란 이름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고, 널리 쓰이게 된 것은 1927년 한글사에서 펴낸 ≪한글≫이라는 동인잡지에서부터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소중한 한글을 잘 사용하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종께서 선포한 것은 글자였는데, 그것을 <정음>, 즉 ‘바른 소리’라고 부른 것입니다. 글과 소리는 엄연히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글을 소리라고 부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글로 모든 소리를 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까지......한글로 표현 못하는 소리가 없습니다. 결국 한글은 소리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였고, 소리를 표현하는 정도에 있어서 세계 최고의 글입니다.
  이상에서 보듯, 글과 소리는 구별될 수 없습니다. 글이 먼저 있고, 소리가 생긴 것이 아니라, 소리가 먼저 있고 그 후에 이를 표현하는 도구로 글이 생긴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른 글이 되려면 먼저 바른 소리, 즉 바른 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 아프게도 요즘 우리 국민들은 바른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좋은 말을 할 줄 모릅니다. 비속어, 저속어가 판을 칩니다. TV나 SNS에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사용하면 금방 퍼집니다. 말이 저속하니, 글도 저속해집니다. 글이 말을 기록하는 도구라면, 우선 말부터 아름다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을 <복음,福音>이라 부르지요. 복된 소리입니다. 그리고 복된 소리를 기록한 것이 성경입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듣고, 한글로 기록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도 최고의 글인 한글을 가진 백성답게, 그리고 그리스도인답게 <복된 말, 좋은 소리>를 내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복된 말은 어디서 나옵니까?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악한 것들이 가득하면, 그 악한 것이 입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18-19절). 결국 아름다운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마음이 아름답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사회에 온갖 악한 말이 난무한다는 것은 그 만큼 국민들의 마음에 나쁜 것이 가득하다는 증거라 생각하니,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워 주시길 기원합니다. 그것들이 복된 말이 되어 나오고, 그것들이 멋진 한글로 기록되어 널리 퍼지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을 예수님과 그 말씀으로 채움으로 복음을 입으로 말하게 되길 원합니다. 오 주님, 우리의 마음과 말과 글을 복되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태그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성서연구] 마음에서 나오나니(마태복음 15장 15-20절)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